Wednesday, December 14, 2011

Living in Christ's Church (4)

4. 그리스도의 총회

교회의 주(Lord)인 그리스도

교회를 우리들이 조직하는 많은 단체의 하나로 보려 한다면, 교회에 대해 잘못 이해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나의 교회, 우리나라의 교회, 목사의 교회, 우리 조상의 교회도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그분의 신부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그리스도는 왕이요 교회는 그분의 왕국이다. 그리스도는 목자요, 교회는 그분의 양떼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교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교회는 건물이나 교회 구성원의 명부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목자 없는 양은 흩어지고 만다. 양을 양사로 모으는 것은 목자의 음성, 곧 목자의 인도이다( 10). 예수께서내 교회를 세우리니"(16:18)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은 사도들의 터위에 세워질 남녀노소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산돌들(living stones)로 세우신다. 그리고 교회는 그분의 소유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피조물이다.

예수께서는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랍비들이 들으면 엄청난 아첨을 한다고 생각할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은 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다시 온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또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가장 존경받는 예레미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목벤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은 무덤에서 일어나 자기를 죽인자를 찾고 있는 세례 요한일지 모른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라고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자, 곧 다니엘의 환상에 나오는 신비스런 인물과 동일시했다. 그 환상에서 이 인물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자의 우편에 앉아 영원한 나라를 받으신다(7:13, 14) 그 질문 방식에서 조차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선지자 이상이심을 강력히 보이신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물으신 다음 그분은 곧장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받는 예수님

이에 대한 대답에서 베드로(열 둘의 대표자로서)가 교회가 그리스도께 결속되어지는 고백을 하게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16) 이런 말을 할때 베드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다가 떠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것은 예수께서 그들이 바라는 정치적 메시야상을 거부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떠나가지 않았다 이는 예수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다는 것, 곧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기 때문이었다(6:67-69).

예수께서는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대답하셨다 이는, 베드로가 나사렛의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곧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표시한 것이라는 뜻이다. 신약의 교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런 믿음이 필요했다 사실 예수께서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에 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사야가 했던 것처럼 제자들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8:16, 17). 예수께서는 정말 제자들을 모으셨다. 예수께서는 이사야처럼보라 나와 및 여호와(the Lord )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8:18; 2:13)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호와(the Lord)를 기다리기 위해 제자들을 모으시는 것이 아니었다(8:17). 그는 주(여호와;the Lord )로서 제자들을 모으신 것이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므로 주의 교회이다. 그리고 주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어떤 능력있는 지도자가 추종자들을 모아서 새로운 운동을 시작 하거나 새로운 조직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중거하는 예수님은 지도자나 선지자가 아니라 주로서 태어나심을 선포했다.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한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1). 그분은 주의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2:26) 그리스도 주이시다 즉, 목자들의 주 뿐만 아니라 천사들의 주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곧 구주로 불리는데, 이는 그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분이시기 때문이다(1:21). 하나님의 백성은 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일은 주의 일이다. 이는 그가 성자 하나님, 곧 육신이 되신 영원한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1:1-4, 18).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오셔서 자기 백생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40:30). 외치는 자의 소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하는 세례 요한의 소리이다. 자기는 예수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요한은 말했다(3:1-3, 11, 12). 거짓 목자가 그의 백성을 돌보지 않으므로 주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의 목자가 되실 것이다. 예수님은 흩어진 양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돌보시고 그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로서 오신다 (10:11: 9:36; 34:11, 12, 23).

하나님의 오심은 희년, 곧 회복과 새롭게 하심의 위대한 시기에 있을 하나님의 종의 오심과 일치되어진다. 그때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께서는 구원의 큰 날에 대해 약속하고 있는 이사야서 61장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다(4: 21). 그분의 선포로 희년을 알리는 나팔이 울렸다. 이는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속죄일의 희생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이다 (25:9; 9:7, 12)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바람과 바다, 귀신의 권세, 적대적인 무리, 저주스런 병, 치명적인 죽음을 주장하시는 그분의 권위의 표시이다. 그분은 죽음에서 일어나시사 사단을 이기셨고, 부활로 자신의 주되심(Lordship)을 증명하셨다. 그분은 만유의 주로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앉으셨다(2: 9-15; 53: 12; 22:69; 17:2; 1:3; 2:9-11; 1:20; 벤전 3:22). 그분은 주와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이다(1:11; 고전 1:7; 살전 1:10; 4:16, 17; 살후 1:7-10).

께서 자기 백성을 모으심

예수께서는 주로서 남은자,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수의 무리를 모으신다 (12:32).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을 잔치에 부르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이시지만, 또한 떡을 떼어 5천명을 먹이시는 시다 이런 표적에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6).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을 모으심으로 거기에 따르는 불화가 있게 하셨다 (10:34-38). 자기 스스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께 나오지 않는 자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이스라엘의 거절에 대해 단호하게 선언하셨다. 포도원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셨다. 이들은 하나님께 포도원의 열매를 드리려고 하지 않고 음모를 꾸며 그분의 아들을 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빼앗아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생에게 주실 것이었다(21:43). 그들이 아닌 남은자 무리에게 그 나라는 주어질 것이다 (12:32; 14:27).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분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새로운 형태이다. 구주로서의 왕권적인 통치권으로써 그분은 지신의 소유된 백성을 불러내셨다 그분은 자기를 그들의 주, 곧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고백하는 자들로써 그분의 교회를 세우신다.


이 반석 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16:18).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기반적인 직분을 임명하심으로써 교회의(토대를 이루는) 기반적인 신앙을 인정하고 계시다.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 베드로 성당의 둥근 지붕 바로 밑 돌림띠 (entablature)에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 캐토릭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용하여 카톨릭 자체의 권위를 주장하기 위해,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새로운 교리를 덧붙이고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재해석하는 이런 왜곡된 성경 해석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양심을 구속하고 있다. 로마 캐토릭은 먼저 베드로를 다른 사도들과 구별지음으로써 그렇게 했고, 그런 다음 로마교황이 베드로의 권위를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이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개신교가 이 구절의 해석에 고심해 왔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논증에 집착한 나머지 때로는 성경 본문이 말하고자하는 것을 경시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당신은 교회의 기초는 어떤 의미로도 베드로가 아니고 그의 고백만이라는 주장을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확고한 논점을 추구하는 자세이다고백하는사도로서만이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 반석”(Foundation Rock)이 된다고 하더라도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 기초”(Rock Foundation)에서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다.

베드로"(헬라어로는 페트로스’, 아람어로는 게바’)라는 이름은반석을 의미한다,페트로스는 분영히 남성형이고 남자 이름이다. 이 구절에서반석에 해당하는 페트라는 여성형이다. 이 단어는 보통 기반을 말하는데 이 위에 건물을 세울 수 있다(7:24, 25). (남성형 페트로스는 헬라어에서 때때로 반석을 가리키 기도 하나 암반층보다는 표석을 말하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강조적으로 베드로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이 이름이 지닌 의미 때문에 베드로에게 친히 지어 주셨던 이름이다(1:42).  베드로는 예수님을주는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너는 베드로라고 하셨다. 이 문맥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은 거의 칭호(title)로 쓰이고 있다. 예수께서는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라고 시작하심으로써 위의 두 서술사 이의 대비를 강조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반석이라 부르셨고 베드로를 당신이 세우시는 교회 터의 반석으로 만드시고자 하신다. 물론,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반석이라 부를 수 있고(32:4), 또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퉁이 돌이라고 부르고 있다(벧전 2:4-8). 성경은 다양한 표상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예수님의 주권은 예수님이 자신을 건축자들의 버린 돌인 모퉁이 돌로 묘사할 때(21:42) 보다 교회를 세우시는 분으로 말씀하실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일 우리가 베드로의 고백을 베드로와는 상관없는 반석으로 생각할 수 없다면, 베드로를 그의 고백과 분리된 반석으로도 또한 생각할 수 없다. 베드로가 반석이라는 것은 성부로부터 계시를 수여받는 자로서이다. 이것은 이 동일한 사건의 후반에서 드라마틱 하게 나타난다. 예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으로 인해 필시 대담해졌을 베드로는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러 가서는 안된다고 힐난하게 되었다 (16:22). 그런데 예수께서는 반응이 이제 완전히 다르다(23). 베드로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는 성부로 말미암아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했을때 그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그 보다더 큰 일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사단을 위해서 말했다는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를베드로라 부르시지 않고사단이라 부르시면서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라고 덧붙이셨다.

이 문맥에서넘어지게 하는 자” (σκανδαλον)부딪히는 돌이라 하는게 더 좋은 번역일 것이다. 이것은 덫 또는 발을 걸리게 하거나 실족하여 넘어지게 할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에 가서 다녀본 사람이라면 돌이나 반석의 돌출부가 종종 발이 걸려 길가는 사람을 넘어지게 한다는 것을 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 8절에서 이사야서 8 14절을 인용할때부딪히는 돌(πετρα σκανδαλου)이란 정식 표현을 쓰고 있다 만일 예수께서 아람어로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면, 필시 이사서의 아람어판에서 보는 것과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이 경우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이제 자기에게 거치는 게바”(ψεπη)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인가! 베드로는 이 장에서 예수님에 의해두번반석으로 불리웠다. 고백하는 사도로서 그는 기초 반석이다. 그리고 사단의 대변자로선 부딪히는 돌이다. 반석 기초는 인간 베드로가 아니라 성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하는 사도 베드로이다.

베드로를 그의 고백이나 다른 사도들과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는 모든 제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표자로서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8 18절에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풀고 매는 권세는 다른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 그들도 역시 천국 열쇠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그가 대표하고 있는 다른 제자들과 달라서가 아니라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그를 지목해서 말한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지식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하면서,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 다른 사람 들이 들어갈수 있도록 그 지식을 사용하지도 않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는다(11:52; 23:1-4). 그래서 천국의 열쇠는 그들 에게서 취하여져 무식한 어부들게 주어졌다. 왜 이런 반전이 발생했는가? 그 열 둘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베드로와 함께 예수는 주시요,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하나님이 주신 확신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증하심

예수께서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신 말씀에 주목하자. 그 분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그분의 뿌리신 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선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죄의 값을 치르셨다(벤전 1:19; 2:24). 그분의 부활의 승리로 말미암아 교회가 선다. 이는 그분에게 죽음과 음부의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1:18). 음부의 권세는 교회를 이길 수없다. 죽음은 그리스도와 또 구주이신 그리스도에게 연합한자들을 포로로 잡을 수 없다 승귀하신 영광을 가지고 그리스도 께서는 교회를 세우신다. 이는 예수께서 구원의 왕으로 높아지셨고, 그분의 보좌로부터 오신 성령께서는 그분 교회의 건축가 이시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말씀의 능력과 성령으로 자신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파괴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백성이요, 그리스도는 시험한 돌이며(28:16),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이다(벤전 2:6). 그리스도께서 망하지 않으시므로 교회도 망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리고 그 나라는 요동함이 없을 것이다. 이는 그분의 나라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13: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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