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4, 2011

Living in Christ's Church (3)

3.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있는 이방 교회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벤전 2:9). 할례자의 사도인 베드로 ( 2:8)에게서 이런말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없다. 베드로는 신약의 교회를 묘사하는데 있어 구약의 용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 말은 19:5, 6 43:20, 21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와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 백성을 대조하는 데에도 용어를 사용한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크나큰 구별점이었다( 7:6) 그런데 이제 베드로는 이스라엘에게 너무나 소중한 바로 칭호로써 교회를 칭하고 있다. 더우기 그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에다 이러한 칭호를 붙이고 있다 (벧전 1:18; 4:3, 4). 이에서 걸음 나아가 베드로는 복음을 불신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지적하면서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말한다(벨전 2:8). 믿지 않는 이스라엘은 버려진 것처럼 보인 반면, 이방인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나타났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자가 나중 것이다( 13:30).

만일 베드로의 말이 우리가 이해하기에 어렵다면, 베드로에게는 얼마나더 어려웠겠는지 생각해 보라 군중들이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을때 베드로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바울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심지어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었을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바울이 그랬듯이, 베드로는 이런 일에서 예언이 성취되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보게 된다. 성경에서 말한 대로 건축자들은 하나님이 택한돌을 버렸고, 그들의 그런 배척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벤전 2: 7; 2: 23; 4:28).

영광에 관한 어떤 것과, 교회를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부르신 엄숙성을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지적할 이런 주제를 어떻게 제시했는가?

주권적인 사랑 안에서의 선택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족장들과 이스라엘 백생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은 족장들을 선택하신 사실에 근거한다. 여호와께서 열조를 사랑하신고로 후손 너를 택하시고"( 4:3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함으로써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지키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아브라함의 )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아 있다. , 하나님께서는 처음 그런 약속을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대답은 사랑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신명기 7 6­-8절을 다시 한번 살펴보라. 여호와께서는 지상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그랬는가? 그들이 지상 만민 중에 수효가 가장 많다든지 중요한 민족이었기 때문은 결단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소수 민족인 그들을 택하셨다. 그들이 신앙에 있어서 가장 지혜롭다거나 신설하다거나 재능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그들을 택하셨는가? 신명기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로 이것에 대해 답하고 있다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이와 같은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말씀은 도대체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단순히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밖에 되는가!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에서 사랑이 가지는 자체의 독특한 어취를 느낀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실,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자하는 사랑일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진실되다 할지라도, 인간의 사랑은 무한히 자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주 희미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은 우리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고전 1:26-3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지혜있는 자나 가난한 자나 귀한 자를 택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어리석고 약하고 천한자들을 택하셨다. 그렇다 낮고 비천한 자들을 택하심은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고전 1: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 택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소유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화, 하나님의 마음에 기뻐하시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당신의 자녀로, 혹은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당신의 신부( 1:10; 11:1; 16:6)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첫번째로 바라시는 봉사는 예배의봉사, 이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보이는 반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이스라엘 민족)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말씀하셨을 ,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봉사이다( 4: 22, 23).

하나님께서는 증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에는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들어 있다( 12:1-3).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첫째의 또는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브라함에게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열방에 대한 아브라함의 증거는 그가 하나님의 친구로서 받은 축복으로써 비롯된다 ( 41:8 ; 대하 20: 7; 2:23).

족장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은 특전과 축복의 위치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분깃이며( 32:9), 여호와께서 기뻐하신 자들( 14:8)이었다. 이스라엘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위치에서 흘러 나왔다. 그들은 자기들을 불러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도 있었을, 선택된 족속이었다 (벧전 2: 9; 43:21). 그러나 그들이 선택된 것은 봉사를 위해서가 첫째가 아니고 그들의 양자권(adaption) 위해서였다. 만일 그들이 자신을 선택된(chosen)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정선한(choice) 백성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단번에 거짓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예수님께 자랑했을 빠졌던 잘못이었다( 8:33).

하나님의 택하심은 좌절되었는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택하시는 사랑을 모독했을 하나님은 진노로써 그들을 심판하셨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의 부정적인 측면이 나타났다.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멸시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배약한 원수를 갚으셨다( 26:25). 하나님께서나의 백성으로 부른 민족은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신분을 상실하게 되었다( 1:9). 북쪽 이스라엘, 다음은 남쪽 유다가 포로로 잡혀갔다. 솔로몬 성전의 불타는 백향목 연기가 한때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던 구름을 대신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의 결국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택하심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좌절되고 말았는가? 그분의 약속은 무효가 되는가? 바울은 선지자들이 직면했던 이런 의문들을 제기하였다( 9-11) 이런 의문들은 바울 사도에게 새롭고도 강렬하게 부딪쳐 왔다. 이는 바울사도가 이스라엘의 죄의 최정점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보다 불길한 증거를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은 가지로 대답했고, 바울사도는 이것을 요약해서 말했다. 첫째 대답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남은 보존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완전히 심판하신 것은 아니다. 두번째 대답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새롭게 해주실 일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선택된 남은 자

하나님께서 백성을 선택하신 목적이 좌절되었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바울은 두가지 이유를 전개시킨다. 남은 자에 관한 교리는이스라엘에게서 그들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9:6).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22:14). 하나님의 선택은 육적으로 후손이냐 아니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행동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 , 참된 이스라엘인이 아님을 드러냈다( 8:39-44).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자를 보존하셨고,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존속 된다는 사실을 자신이 실증해 보였다 ( 11:1).

더우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끝나지 않았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한 열심으로 이방인들에게 사역하였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방인들의 회심이 이스라엘 민족의 시기심을 자극하여 그들 역시 회개하게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방인뿐 아니라 적어도 이스라엘의 충분한 수가 들어와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11:26).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 선지자들은 남은 자의 소수성을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소돔과 고모라의 그것과 같을 것이었다 ( 1:9; 4:11). 포로 기간 동안의 남은 자들의 소수성과 절망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에스겔은 절망 가운데오호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 11:13)라고 부르짖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되신 하나님은 당신의 죄악된 백성을 철저히 멸하지는 않으셨다. 선지자들이 백성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실과 비교될 수도 없다. 하나님 자신의 미움으로부터도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 11:8)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부정한 고벨과 호세아의 결혼이라는 놀라운 상징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신다. 남은자는 버림받지 않고 남아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있다( 4: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들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셔서 보내신다( 40:1,2). 

하나님의 새롭게 하심

남은 자는 따로 보존될 뿐만 아니라 씻음도 받는다. 남은 자는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되고 용서함을 받는다( 4:3). 하나님께서는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이다( 11:19; 36:26).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을 모으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것이다( 31:31-34; 11:19, 20; 16:60-63; 37:26; 36:25-28). 남은 자는 따로 보존될 아니라 새롭게 된다. 하나님의 신이 골짜기의 마른 뼈에 임하자 그것들이 부활의 생명을 받은 것 처럼 ( 37: 12-14).

이스라엘의 따로 보존된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의 모든 영광으로 인쳐 주셨다( 5:7-9; 4:2; 37:31). 여호와의 영광이 동편으로부터 돌아와서 성전에 가득할 것이다( 43:1-5; 48:35). 이런 약속이 포로에서 귀환한 연약한 남은 자들에게 거듭 주어졌다. 그들은 남은 자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상속자들이다(스가랴 8:11-15). 그렇지만 축복의 충만함은 미래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아의 영도하에서 휠씬 뛰어나게 회복되었다. 그것들은 참으로 모든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무지 생각지 못했던 일을 행하실 것이다 ( 33:3; 고전 2:9; 64:4; 65:1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실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 하늘과 땅을 만드실 것이다( 65:17). 선지자들은 회복이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회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어서 모든 것이 아주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열방의 남은 자들도 그들의 포로된 데에서 회복될 것이다 ( 48: 47; 49:6; 56:6-8; 66:18-21) 예루살렘의 모든 세탁통이 성전의 잔과 같이 되고, 여호와께 드리는 거룩한 그릇이 것이다. 대제사장의 관의 황금패에 새긴여호와께 성결이란 말이 방울에까지 기록될 것이다( 14: 20).

하나님의 오심

이와 같은 초월적 영광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의 모든 약속들을 그렇게 완전히 성취하실 있을까? 스가랴서에 이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예루살렘의 가장 미천한 자가 다윗 왕과 같아질 날에 다윗 왕은 누구와 같을까? 그는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것이다( 12:8).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나 엄청나고 성취 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해서 오직 하나님 만이 성취하질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백성의 구주로 오셔야만 한다. 그분이 목자가 되셔서 자기 양들을 모으실 것이다. ( 34:11-16). 그분은 신적인 전사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 59:16, 1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산에 잔치를 베푸실 것이고, 그분을 경배하는 자들은 끝에서부터 계속 줄을 이을 것이다 ( 2:2-4).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고 계시다는 멧세지가 복음인가? 여호와의 거룩함은 얼마만큼 두려운 것이가? 그의 임하는 날에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연단하는 자의 불과같을 것이라’ ( 3:2). 만일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구원하러 오신다면 누가 그 심판을 변할 있는가? 틀림없이 그분의 오심은 그분의 택한 자들에게까지도 심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원수들뿐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의 죄악도 발로 밟으실 (죄악의 소멸, 용서를 말함) 약속하신다( 7: 19). 그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와 거룩함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그들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실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택하신 종

이런 질문에 대해 구약성경은 놀라운 답변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한 자들을 구원하려 오실 아니라 그분의 종이 오셔서 그들의 구주가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택한 종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다( 42:1). 전체 구약성경은 이것을 위해 우리를 예비시킨다. “여호와의 여자의 후손이다( 3:15). 그는 둘째 아담으로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시다.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22:18), 사랑스런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삭이다(22:8). 그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요, 벨기세덱처럼 왕같은 제사장이다( 14:18-20). 그리고 그는 다윗 보다 자손이요, 영원한 보좌를 상속받을 자이다 ( 110; 2)

하나님의 약에 양면이 있다 , 하나님 편에서 하실 일과 그 백성이 해야할 일이 있다. 왜냐하면 언약이 성립되려면, 하나님께서 언약을 내셔야하고, 또 백성은 하나님께서 내신 언약을 이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불행하게도 재삼재사 이것을 이행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된 , 이스라엘과 구별 있는 자를 일으키실 것인데( 49:5), 그에 대해서는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말씀하실 있었다( 49:3). 종은 이스라엘의 소명을 완수할 것이다. 그는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 것인데,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긍흘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었다( 15:8, 9; 49:6).

하나님의 종인 메시야는 그분의 백성의 죄를 대속할 것이니, 이는 그가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53:11 ). 백성들은 그분의 의로 인해, 그분께서 생명을 버리심으로 인해 의롭게 된다( 53:11 , 12) 이러한 소명은 다윗보다 훨씬 뛰어난 자에게 부과되는 것이기에 다윗은 그를 라고 불러야 했다( 110: 1; 22:44). 실로 태어날 아이에게 신적인 이름,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 9:6) 이름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계획의 경이로운 점은 택하신 종의 오심이 (여호와)께서 오심과 같다는 것이다. 그분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의 기적적인 징표이며,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다(7:14).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택하시는 깊은 사랑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21:27). 그들은 만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 ( 1:4; 13: 8; 17: 8). 하나님의 목적은 좌절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고 지금도 버리지 않으신다( 1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들에게 주셨다. 아무도 목자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한다 선한목자는 하나님과 한분 이시기 때문이다( 10:27-29). 이스라엘을 부르심으로써 맺어진 택하신 족속에의 약속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그분 안에서 선택되고, 구속받고, 영화롭게 되었다( 8:29 , 30).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또한 영화롭게 준비를 시키신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1: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이라는 놀라운 교리가 우리에게 새로운 복종과 겸손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썼다. 그는 심지어 언약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조차도, 이스라엘이 공야에서 겪은 전례로 보아 반드시 경고 받아야 하는 위선자들이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증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주님과 굳게 맺어져 있고, 그리스도안에서 성도 상호간에도 그러하다. 구원에 관하여 우리도 바울처럼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하고 고백한다 ( 11:36).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