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8, 2011

창조, 아담 언약

① 문화명령으로서 창조언약(1:2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따라서 세상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좇아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친히 지으셔서 에덴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모든 창조물의 통치권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위임해 주십니다(1:28). 이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창조의 절정과 극치와 면류관으로서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대리적 통치자 (representative ruler)인 우주의 왕(vassal King)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아담 부부가 타락하기 전, 에덴은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예표적이며 성례전적(sacramental)으로 계시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보다 온전하고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책임과 사명이 저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1:28의 창조언약을 통해 주신 소위 '하나님의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creation mandate, Christian stewardship) 속에 담긴 계시의 비밀의 본의(original purpose)가 그랬습니다. 이는 인간의 문화 활동으로서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생명적 활동의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 나라 사상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자손),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통치권, 1:28)고 하신 하나님의 문화명령으로서 창조언약의 중심사상은 본질에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② 선악과 금령법(선악과 언약)으로서 아담언약(2:17)

그렇다면 창1:28에 담긴 이런 원대한 하나님의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이 어떤 방식을 통해 실현 가능할까요. 이는 창조의 원리상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가운데 이를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통해 비로소 가능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적 성격은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시행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으로서 자원하는 순종의 삶을 특징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12:13, 14:21). 바로 이런 사실의 당위성을 극명하게 계시하고 있는 표상(表象)적 사건이 다름 아닌 선악과 금령법(禁令法)에 담긴 선악과 언약(행위언약)의 비밀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

이런 이유로 이후부터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 선악과 금령법(언약)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 순종을 관장하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효력을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아담부부의 생명의 근원이 말씀에 기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의 지속적인 존속여부 또한 철저하게 말씀의 순종에 의존돼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작정 속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이들에게 이후 문화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선악과 행위언약(2:17)이란 자체 속에 조건부적인 단서조항을 포함함으로 일종의 선의적인 시험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2:16을 통해 이미 저들에게 허락된 자유의지(self-will)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성격의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본질적 관계상, 하나님의 뜻을 적극 이루어 드리는 일에 의존적이며 종속적으로 선용되어야 하는 제한된 자유의지입니다. 17절의 선악과 금령법에 의해 아담의 행동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음이 이를 반증합니다. 이런 사실은 아담이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데서도 극명하게 확인됩니다(2:19-20). 다시 말해 아담은 각양의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줄 때 임의대로 명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부합되게 지어준 것입니다(의존적 자유의지). 이는 또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 보다 구체적으로 표출된 경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일의 경우 아담부부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제한된 자유의지를 오남용함으로 월권을 하게 된다면, 선악과 금령법에 담긴 하나님의 요구는 경우에 따라서 무시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악과 사건이 시험적 성격을 담고 있다는 관점이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존재이유와 가치성과 본분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그 분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복하는 데서 비로소 찾아짐을 확인하게 됩니다. 12:13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따라서 아담부부는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16절의 범주 안에서 만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7절과의 관계 속에서는 철저히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한정적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실까, 주님이시라면 이 일을 행하실까,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이 일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될까 등등의 질문을 던져보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상의 질문에 ’예와 아멘‘으로 답변할 수 있다면 이는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자유의지를 선용하는 셈이 될 줄 압니다.

③ 원시복음으로서 여자의 후손언약(3:15)

한편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다 실패한 사단과 그의 졸개들에게 세상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저들에게 허락된 통치의 영역입니다(12:31, 16:11, 4:8, 6:12).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아담 부부와 그들의 후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는 계획을 감지한 사단은 천상의 영계에서 이루지 못한 사욕을 채우고자(6, 벧후2:4, 14:12-15) 이번에는 뱀을 하수인으로 삼아 창조의 면류관인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합니다. 이번에는 직접 공세를 포기하고 우회전술을 시도합니다. 이 시험에 아담과 하와가 빠지고 맙니다(3:1-6). 이로 인해 에덴에 죄가 유입됩니다. 이제 에덴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수 있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천상적 모습과 성격을 잃게 됩니다. 인류에게는 실낙원이 돼버린 셈입니다.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한 순간에 깨져버립니다. 비록 이들에게 선악과 행위언약 속에 조건부로 주어진 죽음이 즉각적으로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3:8-10)은 본질에서 죽음과 방불한 형벌로 기능하기에 충분합니다. 사단이 승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듯 보입니다. 따라서 창1:28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로서 신정왕국의 건설을 위한 문화명령적 언약은 파기된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사단은 영계에서 못 다한 한을 여기 지상에서 보상받는 듯 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위 ‘하나님의 딜레마’(God's dilemma)가 제기됩니다. 1:28의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에 근거하면 이 언약이 성격상 은혜성을 띠고 있기에 어떤 경우라도 중도에서 파기될 수 가 없는 상황입니다 (창조언약의 기원은 사실상 엡1:3-6에서 찾아집니다). 하나님은 기어코 아담과 하와 부부 및 그의 자손들을 통해 문화명령의 결국인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만 하십니다. 그러나 창2:17의 선악과 금령법은 조건적인 행위언약의 성격을 띠고 있는 바, 이를 어기면 불순종의 대가로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부부(3:6)는 죄인으로 정죄돼 죽음의 선고는 필연적입니다. 그렇게 되면 창1:28의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상기 두 언약 사이의 상호 반목과 대립 및 충돌과정에서 ‘하나님의 딜레마’란 문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님의 의인화 곧 신인동성동형의 원리에 근거해서).

다시 말해 문화명령적 창조언약(1:28)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나 선악과 금령법의 행위언약(2:17)은 이를 어긴 아담 부부의 즉각적인 죽음을 요구하면서 더 이상의 진행을 불허합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하나님의 딜레마’란 이런 양극단의 대립양상을 염두에 둔 데서 나온 수사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창조자의 절대 주권적인 특성상 어떤 이유로라도 파기되거나 변개 될 수 없습니다(23:19). 더욱이 선악과 금령법은 비록 그것이 행위언약의 성격을 띠고 조건부적으로 주어졌다 할지라도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입장에서 창1:28의 은혜언약에 부속돼 있음으로 죽음의 형벌이 언약적 징계와 심판의 성격을 띠고 주어질망정, 영원한 형벌로서 아주 사망에 처해지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된다면 이는 창1:28의 언약이 식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은 그 출처가 본질에서 신적 기원 곧 주권성과 은혜성에 근거하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성취돼야만 하는 당위성을 이미 자체 안에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비록 아담부부가 선악과 금령법(2:17)을 어김으로 사형선고가 불가피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언약(1:28)과의 관계상 언약적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형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죽을 수는 없는 상황에 처해지게 됩니다. 이런 진퇴양난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편으로 창2:17의 선악과 금령법을 어긴 이들의 죄책(3:6)을 해결해 주시며, 다른 한편으로 창1:28의 문화명령적 언약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 나라를 지속적으로 성취해 나가시는 방식의 일환으로 창3:15의 여자의 후손 언약을 맺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언약은 이상의 양자 간의 불가피한 상호 충돌을 동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해결책으로서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자의 후손언약을 일컬어 복음의 원형(prototype), '원시복음' 또는 '어머니 약속'(mother promise)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안에 구속계시의 원리상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대속적 속죄사역의 의미가 암시적으로 내포돼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이는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구속사역 안에서 절정을 이루는 가운데 마침내 성취되기에 이릅니다(4:4).

④ 구속의 원리를 방편으로 선용하셔서 창조원리를 지속시켜 나감

이제 당초 창조원리(1:28)에 근거해 타락 전 무죄자로서 아담과 하와와 이들의 후손으로 인해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건설 계획은 이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죄를 구속해 주시는 속죄의 원리와 방식(3:15)을 통해 재정립 되기에 이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으로서 하나님 나라 건설이 당초 창조원리에서 구속의 원리로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갱신될 뿐입니다. 다시 말해 구속의 원리를 방편삼아 처음 창조원리에 입각한 하나님 나라 건설 계획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죄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찾으시려는 창세전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이런 방식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1:4, 2:23, 4:27-28).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런 식으로 세상역사(표면적 사건)의 본질이 하나님의 구속사(이면적 사건)인 사실을 통해 인류의 유일한 구속자로서 성육신의 길이 예비 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창4장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세상역사는 표면적으로 보편적 인류의 역사라는 성격을 띠고 피조세계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만, 사실은 여자의 후손(3:15)을 세상 가운데 보내시는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문화명령의 결국이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인 하나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려는 구속사의 현장이요 무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이런 관점에서 창1-2-3장에 각기 기록된 언약에 관한 상호 연계성과 의존성 및 이에 대한 정당한 해석여부는 이후 전개되는 성경의 계시역사 전반에 걸친 언약적 구속사의 내용을 하나님의 본의를 좇아 바르게 해명하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근간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⑤ 여자의 후손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역사

이상 창 1-2-3장에 각각 언급된 언약간의 상호 필연적인 연계성은 창4장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자의 후손언약을 구체적으로 성취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출발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언약적 구속사라 부릅니다. 여자의 후손을 세상에 출현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언약을 수단과 방편삼아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언약의 당사자로서 미래의 메시아는 계보적으로 당연히 아담과 하와의 혈통적 후손을 통해 세상에 출현하게 될 것입니다. 세속사의 본질이 구속사인 사실이 이런 상호관계 속에서 도출됩니다.

이상의 사실들을 고려하건대, 4장에 소개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단순히 시기질투에서 빚어진 충동적인 살인행위가 아닙니다. 표면적(세속사적 관점)으로는 아벨의 제사만 열납 된데 대한 가인의 감정적인 문제가 깊이 개입된 결과로 보여 집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담긴 보다 본질적인 의미는 여자의 후손언약 속에 이미 언급된 인류의 두 후손, 곧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간의 끊임없는 적대적인 대립과 충돌에 관한 예언이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가인은 뱀의 후손으로 아벨은 여자의 후손언약의 당사자로서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벨의 제사가 상대적으로 열납 된 사실은 제물의 차별성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11:4)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여자의 후손언약 속에 담긴 원시복음의 내용을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살아온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의 당연한 결과일 뿐입니다(6:8-9, 11:8, 2:8-9, 고전15:10).

이후 성경의 계시역사는 철저히 여자의 후손언약을 성취시켜 나가는 언약적 구속사의 성격을 띠고 세상역사 속에서 진행돼 감을 봅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런 구속사의 진행을 특별히 족보의 기술을 통해 암시적으로 시사합니다. 5장에서 소개되는 아담의 족보는 여자의 후손언약이 아담으로부터 시작해 죽은 아벨 대신 주신 셋을 통해 에녹과 노아에게로 연결되는 것을 봅니다. 구속사 진행에 있어서 족보의 의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증거, 새로운 계시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 여자의 후손계보를 위한 언약적 구속사 진행의 통로로서의 기능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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